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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문화일보』 [오피니언]포럼-유성진 '安대표 사퇴와 정치인의 ‘책임 윤리''

  • 분류 : 스크랜튼학부 자유전공
  • 작성일 : 2016-07-08
  • 조회수 : 1683
  • 작성자 : Scranton

[오피니언]포럼-유성진 "安대표 사퇴와 정치인의 ‘책임 윤리'"


게재 일자 : 2016년 06월 30일(木)


유성진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천정배 공동대표와 29일 동반 사퇴했다. 국민의당은 지난 4·13 총선에서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38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면서, 견고해 보이던 양당 구조에 파열음을 만들며 3당 체제의 문을 열어젖히는 쾌거를 거뒀다. 이후에도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함으로써 입지를 넓히며 제도권 정당으로서 안착했고, 그 과정에서 안 대표 역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거침없던 국민의당과 안 대표의 행보는 지난 6월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인 김수민 의원을 고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사안은 생각보다 심각했으나 국민의당의 처리 방식은 기존 정당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그 속에서 지도부의 책임론이 불거졌으며 급기야 두 공동대표의 사퇴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퇴를 두고 안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이후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도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던 만큼 책임을 피해 가는 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안 대표 자신도 사퇴의 변에서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라며 기존 정치인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안 대표의 사퇴가 진정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인지는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인이 대표로 있는 정당의 구성원이 연루된 의혹에 대표로서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대표의 사퇴로 사안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든 자유의사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행한 약속을 어겼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정치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다만, 정치인의 책임이 개인의 그것과 가장 다른 점은 정치인의 결정은 본인뿐 아니라 공동체의 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번 사퇴로 ‘개인 안철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지 모르나 ‘정치인 안철수’는 그렇지 않다. 정치인이 책임져야 할 대상은 좁게는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 넓게는 국민 모두이고, 정치인의 책임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가리킨다. 막스 베버가 정치의 영역에서 ‘책임 윤리’의 중요성을 언급한 이유는, 정치의 속성상 선택과 결정이 가지는 영향의 폭과 범위가 크기 때문에 정치적인 선택에 있어 그 선택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그만큼 신중한 고려가 선행돼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 대표가 사퇴를 결정하면서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과 처리 원칙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건 ‘책임 윤리’를 온전히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외견상 공동대표의 형식이었지만, 국민의당은 정치인 안철수의 ‘새정치’ 비전 속에 만들어졌고 유지돼왔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 속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새로움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이번 사퇴로 국민의당의 미래는 미궁에 빠졌으며, 그만큼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도 더 커졌다.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줄곧 말해 온 안 대표는 사퇴로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사퇴와 상관없이 스스로 주창해 온 ‘새정치’를 통해 현재 국민의당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간 국민에게 해 온 약속들을 지켜나갈 때에만 ‘책임 윤리’를 다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정치인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지지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책임정치를 보여줄 때다.